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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0년된 숙제

무이골 2010. 5. 20. 19:39

 

문득 40년전 중학생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리며 선생님께로부터 받은 숙제가 생각나기에

자판을 두드려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망우리고개를 넘어 양평으로 이어지는 46번 국도가 비포장도로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공립학교가 무엇인지, 사립학교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던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여 나무판자로 벽채를 덮고 복도는 초칠을 해서 반들거리는, 교실을 덥히기위해 조개탄을 때는 그런 시절이고 학교도 그 무렵의 학교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런 학교였습니다.

 

저희 담임선생님은 종교학과를 졸업하시고 어떤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아직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산너머 어디쯤엔가 집을 구해 그곳에서 걸어서 출퇴근을 하신 것 같습니다. 영어를 가르치셨지만, 13살 어린 저희들에게 그래도 좋은 말씀들을 많이 전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서 책을 사볼 형편이 아니었던 제겐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대학을 들어가 어려운 책들을 폼잡느라 들고다니고, 데이트를 해도 꼭 서점에서 만나며 헛된 치장을 한창 하던 시절, 우연히 들른 종로서적에서, 중학교때 담임선생님이 들려주시던 이야기들이 톨스토이의 작품들이란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불을 끄지 않고 놔두면 ', '바보 이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땅........' 등등

 

햇수로 꼭 40년전 3월 어느날이었습니다.

저희반에 1등으로 입학한 진호를 일으켜세우시고는 물으셨습니다.

'너는 왜 중학교에 들어왔니 ?'

 

전혀 생각도 못한, 선생님께서 이런 질문을 주실 지 상상도 못한 질문에, 진호는 대답했습니다.

'네, 고등학교에 가려고요....'

 

선생님께서는 다시 물으셨으습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진호는 다시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 대학교에 가지요....'

 

선생님은 다시 또 물으셨습니다.

' 대학교를 졸업하면.....?'

.

.

.

.

 

진호는 다시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 할아버지가 되겠지요....'

 

선생님은 다시 또 물으셨습니다.

' 그리고 그다음엔.....?'

 

허걱..........,

선생님과 진호사이에 몇차례 질문과 대답이 오갔지만 저는 전혀 생각하지도 답도 생각해보지도 못한 문답이 오가는 것을 그냥 멍하니 지켜볼 따름이었습니다. 진호가 질문에 답하면 선생님께서 더이상 질문하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꾸만 이어지는 질문에 또박 또박 잘도 답하던 진호가 드디어 답이 궁해졌습니다. 그런 진호에게 선생님께서는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

 

답을 못하는 진호에게 선생님께서는

'진호야 참 답을 잘해주었다. 그런데 그리고 그다음엔 어떻게 되지? 어떻게 하지? '

하고 물으시며, 빙긋이 웃으셨습니다.

 

까까머리 13살 중학생들의 120개의 눈동자는 선생님의 입을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잠시 우리들을 둘러보시고는 선생님께서

이 질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영국의 어느 대학생이 등록금이 부족하여 교수님을 찾아가 도움을 구하였을 때

교수님과 학생간의 대화라며, 그 교수님의 묘비에 적힌 글이 바로

 

'그리고 그 다음엔, 영원히 영원히.........'

라고 하시더군요.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이 말씀의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그때 그 수업시간에도 담임선생님께서는

그 깊은 뜻을 말씀해주시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숙제란 말씀도 하지 않으셨지만,

저 혼자 숙제처럼 가슴에 안고 지금껏 간직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영원히 영원히.........'

 

 

출처 : 통나무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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